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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D OF Part 1 *******
나는 ‘Georgia Tech’ (Atlanta, GA) 에서 Master’s degree를 받고 2년간 Research Faculty로 일을 마치고, 박사학위를 추구하러 Atlanta 에서 동북쪽으로 2시간 반 Driving 거리에 있는 ‘Clemson University’가 있는 Clemson, SC로 가족과 함께 떠났다.
Clemson은 미국 동남부 ‘Appalachian’ 산맥 맨 아래쪽에 자리잡은 아주 조용한 시골마을 Campus town 이다. 그 당시는 미국에서 섬유과학 분야에 박사학위 과정이 있는 대학이 몇개 없었고, Clemson University 에서는 우리 가지 전해에 처음으로 Ph.D. 과정이 시작되었다.
자라는 두 자녀를 데리고 오로지 학교 장학금에만 의존하는 우리 가족의 가장 어려운 생활이기도 하였지만, 아름다운 환경과 훌륭한 학위 Program에 전력하며 수학에 임하였다.



























































































































******* THE END *******
P.S. 지금 도리켜 보면, Clemson University 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밟으며 가족과 함께 지낸 동안은, 비록 경제적으로는 학교 장학금에만 의존하는 어려운 살림이었지만, 너무나 아름답고 자연스런 주위 경관 속에서 또 자라는 애들도 가장 소위 ‘애를 덜 먹이는 사랑스런 나이’ 때이고, 아내의 정성스런 내조 속에 학위에 몰두할 수 있는 그 때가 우리 가족 모두에게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지금 여겨진다. 그런 삶을 갖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I left Seoul, Korea in the summer of 1968 to pursue my graduate work at ‘Georgia Tech’ (Ga Institute of Technology) in Atlanta. My wife and son, 18 months old then, joined me in the fall to start our new family life in Atlanta. After getting a master’s degree, I worked in a faculty position as an assistant research engineer in the School of Textiles at Tech for two years. During that time our second child, a southern belle, was born. After three and a half years in Atlanta, we left for Clemson, South Carolina, for me to seek a doctorate degree in Textile and Polymer Science at Clemson University.













































******* THE END *******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8년 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에 입학하였다. 1학년 봄학기를 지나고 같은 마을 (불암산 아래 공능동)에 하숙을 하고 있던 네분 형제를 만나게 되었다. 나보다 한 학년 위가 세분, 그리고 두학년 위가 한분이다. 우리 살던 집들이 조그만 언덕바지에 있어 우리는 그곳을 ’The Home On The Hill’ (THOTH) 라고 애칭으로 불렀다. 그리고는 이 다섯 형제가 더 한적한 옆 마을에 방 두개를 빌려 대학생 남자 다섯의 자취생활을 시작하였다.
아래 Photo-essay life story는 그때와 그 이후 우리 THOTH 형제들의 삶의 이곳 저곳을 내가 소장하는 사진들을 중심으로 엮어져 있다. 공부하는(?) 시간 외에는 이 시골마을 주위의 산과 들로 뛰어 다니며 온갖 젊음의 아름다움과 또 때로는 어리석음을 즐기며 다니던 추억 어린 시절이었다. 우리 중 한분 형은 Pro 급 Musician 이라서 그의 Banjo 음을 따라 우리는 많은 Folk song 들도 불렀다. 그중에도 THOTH를 연상케하는 ‘(The) Home on the Range’를 늘 부르곤 하였다.
♬ ♬ ♬ Oh give me a home, where the buffalo roam ♬ ♬ ♬
Where the deer and antelope play,
Where seldom is heard a discouraging word, and the skies are not cloudy all day.
Home, home on the range, where the deer and antelope play,
Where seldom is heard a discouraging word, and the skies are not cloudy all day.
[Note: Photos are arranged in chronological order.]








































































******* THE END *******
나는 1958년 봄에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섬유공학과’에 입학하였다. 2학년을 마치고, 만 20살에 군에 입대하여 학보병으로 18개월 복무를 마치고, 귀교하여 수학중 병고로 한학기를 더 쉬고, 1964년 여름에 졸업을 하였다.
대학 공부를 시작한 것이 지금 (2023.12.) 부터 65년도 더 된 적의 일이다. 돌이켜 보면 그때 한국은 너무나 가난한 나라였다. 그속에서도 가난을 참으며 학업을 이어나가고, 졸업의 영예를 갖게된 것은 우리 학생 모두의 각고의 노력의 결과라고 믿으진다.
나의 대학 시절은 우리집에서도 부친이 1학년 말 학기말 시험 중에 돌아가셔서, 나의 일생에 경제적으로 가정 어려운 시기를 맞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그 어려운 시절을 이기고 살아 남았는지를 의아하게 여기게 된다.
그 당시 서울공대 교정은 공능 ‘불암산’ 기슭에 자리잡고, 졸업할 때 까지 같은 교정을 유지하여 다행이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대 자연의 시골 마을 College campus 이었다.
아래 사진과 글은 대학 4~6년간 그 속에서 찾은 젊음의 열정과 낭만 또 동료 학생 간의 아름다운 우애를 이곳저곳 그려보고 있다.








































































******* THE END *******
나는 대구에서 태어나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내 생애의 처음 18년을 대구에서 자라며 지냈다. 6.25 동란으로 중학교 시절은 (1952~55년) 교정 군인 기지에는 한번도 들어가 보지를 못하며 강변에 지은 가교사에서 수업하고 졸업 하였다.
다행히 경북고교 교정은 막 새로지은 건물이라, 아름다운 배움의 터전이 되었고 또 여기서 졸업을 하게되는 행운을 가졌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Campus가 여러번 바뀌는 일이 있었다. 수업하던 교정이 자주 바뀌는 것은 마치 자라는 아이가 보금자리를 잃어버리는 것과 흡사하다고 느껴진다.
훌륭한 교사진과 빼어난 수준의 동료 학생들과 3년 간의 수업에서 얻은 지혜, 식견, 우애와, 모교 사랑은 우리들 마음 깊은 곳에 큰 몫을 차지하고, 지금도 변함없이 간직되어 있다고 여겨진다.
[아래 사진들 중에 우리 연령대에 많은 분들이 고인이 되셨습니다. 명복을 비는 예의와 근엄한 존중의 뜻을 담으시도록 당부를 드립니다. 2023.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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